그동안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직능단체와 언론 전문가들은 재난참사 현장을 취재하며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피해자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하지 말 것 ▲피해자들의 애도와 추모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무분별한 취재와 촬영(무리한 접근, 동시다발적인 촬영 등)을 하지 말 것 ▲장례식장 취재는 자제할 것 ▲피해자의 슬픔과 사연을 알아내려 과도한 인터뷰 요구를 자제할 것 ▲'풀(Pool) 취재'를 최대한 활용할 것 등이었다.
'이태원 참사'를 계속 취재해 온 경험에 비춰 재난참사 현장에서 '풀 취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풀 취재는 기자들이 각자 다른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을 다른 언론사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하면 피해자의 인권과 사적 영역을 보호하는 동시에 국민 알 권리를 위한 보도도 할 수 있다. 다수의 기자가 같은 현장에서 같은 취재를 반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재난참사 현장에서 피해자를 상대로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라는 질문은 당연히 나올 수 있다. 그런데 10명의 기자가 똑같이 물어본다면 어떨까. 참사 당시에 대한 반복적인 회상이 트라우마를 악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냥 풀단을 꾸리고 대표 기자 한두 명을 정해 질문하게 한 뒤 답변 내용을 모두 공유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재난참사 현장에서 풀 취재는 열에 아홉은 성사되지 않았다. 피해자 권리 보호가 취재 경쟁보다 더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했지만, 정작 현장에선 '언론 편의주의'가 만연했다. 당장 일하기 바쁘니까, 풀단을 꾸릴 시간이 부족하니까, 다 공유하면 독점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한 단독 기사나 속보를 쓰기 힘드니까 등의 이유였다.
언론은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직후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결례'를 범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이 이송된 위치를 확인하려 서울 용산구 한남주민센터에서 대기했다. 이때 여러 기자들은 주민센터를 오가는 유가족을 일일이 붙잡고 인터뷰를 시도했다. 희생자들이 안치돼 있던 각 병원 영안실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후 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사석에서 "내 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거기서 '지금 감정이 어떠세요'라고 묻는 게 폭력적이었다. 더 힘들었던 건 한 기자에게 어렵게 답해주면, 그걸 본 다른 기자가 와서 '저한테도 한 말씀 해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하는 거였다"고 말했다. 다른 유가족은 "장례식장에서 여러 언론사가 계속 찾아오며 취재를 요청하는데 너무 화가 났다. 꼭 그래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미 이태원 참사 유가족으로부터 언론이 준 여러 상처에 대해 여러 번 들었던 기자로서는 무안공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 우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무안공항에서 마주한 언론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는 생각이다.
'풀단 꾸려 취재하라' 모두 수긍했다
12월 30일,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은 참사 하루 만에 '유가족 대표단'(현 유가족 비상대책위원회)을 구성했다. 대표단은 유가족들의 요구 사항을 정부 측에 전달하고, 희생자 수습과 신원 확인, 추모 시설 설치 등과 관련해 당국과 수시로 논의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표단은 기자들에게 '취재기자 풀단'을 만들라고도 요청했다. 여러 기자가 계속 대표단을 찾아와 취재를 시도하면, 대표단의 본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였다. 유가족이 기자들에게 풀 취재단을 만들라고 제안한 건 처음 본 광경이었다.
바로 풀 취재단 단체 대화방이 만들어졌고, 대표단에서 정한 언론 담당 유가족 1명이 대화방에 들어왔다. 이에 따라 언론 담당 유가족을 통한 취재만 가능했고, 별도로 대표단이나 여타 유가족을 접촉하지 말자는 규칙이 세워졌다.
거의 모든 기자들은 유가족의 요구와 규칙을 지켰다. 풀단 밖에서 독단적으로 대표단을 취재하려는 기자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아직 희생자 신원 확인이 진행 중인데, 유가족 부담을 늘리는 과도한 취재는 서로 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진 것 같았다.
또 기자들은 유가족이 머무는 텐트 주변으로 가지 않았고, 바로 옆에서 유가족들이 얘기하고 있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대화 중에는 분명 기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들은 유가족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유가족 항의에 대한 반응과 수용도 빨랐다. 단체 대화방에서 언론 담당 유가족이 기사의 오류를 지적하면, 기자들은 바로 사과하고 기사를 수정했다. 취재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때도 충분히 설명했다.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다.
.. 후략 ..
경호처 균열 가시화?.. '강경파' 김성훈 체포영장 검토 (0) | 2025.01.12 |
---|---|
"노 장군 지시대로 해".. 노상원 뒤 언제나 김용현 등장 (0) | 2025.01.11 |
"누구 찍었는지 인증샷" 성남시의회 국힘 의원들 무더기 기소 (0) | 2025.01.11 |
'국격' 운운하며 궤변.. "영장 무시가 국격 훼손" (0) | 2025.01.11 |
김남국, '코인 의혹' 제기한 장예찬 상대 손해배상소송 일부 승소 (0) | 2025.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