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 직무대리는 7월14~18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국제화해학회(IARS) 서울대회를 준비하는 중이다. 한국에선 아직 낯선 개념인 ‘화해학’(Reconciliation studies)을 연구하는 국제화해학회는 평소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온 독일 예나대학과 일본 와세다대학 학자들이 중심이 돼 2020년 만들어졌다. 남 소장은 “화해학은 갈등해소학과 기억학과 같은 평화학의 한 갈래”라며 “폭력 행사 등의 충격으로 인해 관계가 붕괴하거나 어그러진 뒤 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남 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겨레’와 만나 “우크라이나와 가자 등에서 우리는 폭력이 삶을 파괴하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며 “지금 정전이 논의되지만 화해의 과정에 대한 고민 없이 이루어질 경우 폭력의 연쇄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화해학회 대회는 학회 출범과 함께 열리기 시작됐다. 2020년 1회 대회는 우크라이나 갈등을 주제로 독일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렸고, 이후 일본(2회)·미국(3회)·르완다(4회)·이탈리아(5회) 등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해마다 열리고 있다. 서울대회는 6회째다.
남 소장은 “학회 쪽에서 올해 대회는 아시아에서 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는데, 한-일 관계 등 여러 ‘화해’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인 한국이 개최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선뜻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데 씨알재단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왔다. 남 소장은 “재단의 김원호 이사장께서 용단을 내려 주셔서 대회 사무국 운영 등 재정지원을 해주기로 해 대회 개최를 결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지난해 가을부터 사무국·조직위원회·집행위원회 등을 구성하고, 누리집(www.iars2025seoul.org/) 문을 열었다. 현재는 대회 위상에 걸맞게 화해의 한국적 의미에 대해 ‘기조 강연’을 해줄 연사를 확정하는 등 몇몇 중요한 마무리 작업을 남겨두고 있다.
대회 기간엔 전 세계에서 참가한 패널 30명이 화해를 주제로 다양한 발표를 한다. 한국에선 조직위원회를 구성하는 단체인 씨알재단(한반도 평화에 대한 주변국의 입장과 국내의 대립하는 시선), 김대중학술원(화해의 정치가, 김대중), 대화문화아카데미(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대화),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누가 화해를 말할 수 있는가), 외교광장(전환기 종전의 정의), 평화재단(평화와 화해를 위한 아시아의 종교 간 대화) 등이 참가한다. 일본에서는 도시바국제교류재단, 아쓰미국제교류재단 등의 참가가 예정돼 있다.
“사실 한국만 봐도 한-일 화해, 남북 화해, 4·3과 5·18 등 국가 폭력으로 인한 희생 등 화해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여러 문제로 관계가 파괴되면, 화해 과정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원상회복’을 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재발 방지책이 나와야죠.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경우엔 아예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고, 어떤 때엔 화해가 불가능한 경우도 생깁니다. 화해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과정인데 한국에선 이 말이 쉽게 통용되고, 오염되게 쓰이는 경우도 있죠.”
화해란 말이 오염된 극단적인 예가 가해자가 스스로를 용서하는 영화 ‘밀양’(이창동 감독., 2007)적 상황이나, 화해를 위해 식민지 출신 여성 피해자에게 가해자인 일본인 남성의 논리까지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제국의 위안부’(2015)와 같은 시도들이다. 남 소장은 “화해란 절대로 가해자의 책임 소재 파악과 그에 입각한 처벌의 과정을 뛰어넘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을 포함하는 과정”이라며 “이 과정에서 영화 밀양에서처럼 피해자가 신의 힘을 빌려 가며 노력을 해도 화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화해학은 사회과학과 역사학을 넘어,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묻는 신학과 윤리학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화 밀양 마지막 부분에서 배우 송강호가 하는 것처럼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게 화해의 불가능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화해는 아니지만, 화해로 가기 위한 입구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할까요.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죠.”
남 소장은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화해학의 틀에서 봤을 때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 반 동안 해온 ‘대일 외교’의 가장 큰 패착은 가해자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화해의 과정을 아예 끊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정부의 대일 외교의 가장 큰 잘못은 ‘더 이상 사죄할 수 없다’는 아베 담화(2015)의 논리 위에 선 일본의 방식에 우리가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화해는 장기적으로 미래에 열려 있어야 하는데 이를 끊은 것이죠.” 남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는 “박정희 대통령 때 한-일 국교정상화로 만들어진 ‘65년 체제’를 극복하는 것보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외교에 더 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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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11853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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